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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샘

플로라방 2006. 11. 20. 00:03

청국샘 처녀 / 조 해(아침 바다)


까깨등 아지랭이 산달래 간지를때
칡뿌리 캐내먹고 맹이지 쌈싸먹네
달밝은 학동댁밭 눈썰매 타던우리
뉘좋아 떠났느냐 무정한 내사랑아
눈속의 동백꽃만 내마음 알아주리

청국샘 샘터가에 갓익은 능금손자
깨물어 입에넣고 빙그레 웃던그대
농익은 산뻔열매 입술가 물들이고
마구막 씹어면서 맹세한 우리사랑
섬처녀 아픈가슴 육지를 원망하네

늦은봄 뽈뚜열매 둘이서 먹여주며
오박골 개울가에 손잡고 웃던우리
뱃고동 울어대어 달려간 도동항구
아무리 찾아봐도 내님은 아니오고
저멀리 수평선만 한없이 바라보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전경








*** 산달래(산달랭이,한약재: 해백의 일종?)

칡뿌리(한약재: 갈근)
맹이(명이,산마늘)
능금손자(아기능금?)
산뻔열매(섬벗나무열매)
마구막(마가목열매, 한약재:정공등(마가목의 줄기))
뽈두(봄보리밥나무, 봄보리장나무열매)


[향토 지명 유래 ]

[울릉읍 도동] 청국샘

개척 초기에 이 곳 도동에서는 일본 사람과 중국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식수가 없어 냇물을 길러다가 먹었던 것이다.
1918년 지금의 청국샘앞에 청국사람 왕씨가 조그만한 상점을 차리고 있었는데 식수가 없어 곳곳에 웅덩이를 파던중 하루는 집앞 땅속에서 물이 나오느것을 발견하고 이 물을 마셔보니 물맛이 좋아 웅덩이를 파서 샘을 만들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이 샘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있어도 이 물만은 계속 솟아나왔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로서 물맛 좋기로 유명하였다.
그후 청국사람이 판 셈이라고 하여 청국샘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 청국샘이시여

청국샘!

청국사람이 뚫었다 해서 청국샘 (마산의 蒙古井 처럼)이라 한다고 어릴적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다.
도동사람들뿐만 아니라 울릉도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마셔본 적이 있는 청국샘물
어머니 젖 맛 다음 가는 맛!
아무리 자주 마셔도 물리지 않는 물맛은 물의 성질 중 연수(軟水:단물 ,soft water)의
대표가 될만한 그 물맛!!

도동에 상수도가 없었던 시절
바로 주민들의 젖줄이었던 천혜의 샘이여!!
눈오는 겨울날에 단팥죽 혼자 몰래 사먹고 양치질하고 손 씻을(닦을) 때에도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느낌!

큰 문어나, 큰 가오리나, 큰 방어가 잡혀온 날
청국샘 바닥에 순서를 기다리며 드러누운 덩치 큰 녀석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신기해하던 동네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 그 샘가!!
빨래터가 비는 날이면 물을 가두어 놓고 종이배, 모형배, 띄우며 놀던 시절이
세월의 저편으로 멀어지고 또 멀어지고....
동네 아낙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빨래하던 그곳은 수많은 정담이 꽃피어
동네 방송국이 되었었고 .....
지금은 차도 개설로 도로 밑으로 멀어져 눈에 잘 띄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여!!

울릉도 사람들의 얼굴모습 하나하나를 수면에다 비춰 사진 찍어 놓았다가
오랜만에 고향 찾는 향우들에게, 젊은 옛 시절의 모습들이 빛 바랜 사진첩을
열면 나오듯, 옛 모습을 그대로 투영시켜줄 우리들의 샘물이여!!

그 언젠가 다시 찾아 나의 옛 모습을 비춰보리라
새미 기픈 물은 가뭄에 아니 뮐세라 했던가
만경창파와 싸우고 들쥐와 깍새와 싸우면서 일궈온 우산의 산야,

추위와 배고픔과 폭설로 고생했던 그 옛날 개척민들의 꺾이지 않은 투지처럼
청국샘물은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니......

어떤 역경도 잘 해쳐나가는 꾸준하고 강인하며,
인정많은 고향분들과 향우님들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애향심은
바로 이 청국샘물의 정기와 정신에서 나왔다고
저 멀리 보루산이 전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